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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창작

무제

Rieno 2012. 10. 18. 00:00

  

* 생축글 for 옹

* 제시어 : 선비물, 죽마고우

* 결과물 : ...?

 

 

 

 

 

 

 

 

 

 

 “떠날 채비를 하시지요.”

  

 운사는 천천히 찻잔을 들어올렸다. 그 얼굴이 하도 평온하여 흡사 “날이 좋군요.”나 “텃밭에 무꽃이 곱습니다.”와 같은 말을 하고 있는 것 같았다. 우사는 난데없는 누이의 말에 눈을 깜박거렸다. 잿빛 띤 희푸른 눈동자가 나타났다 사라졌다 하는 것을 보며 운사는 담담하게 차수를 머금었다.

  

 “나들이를 가자 말이냐?”

  

 운사는 고개를 저었다. 아담한 차향이 썩 마음에 들었다. 기우제의 공물이었다. 떠올리고 나서 그녀는 속으로 아차 하였다. 비부터 뿌려주었어야 할 것을. 숫기 없는 오라비의 낯은 한동안 뾰로통해있을 것이 분명했다. 속내는 전혀 다르다 할지라도.

  

 “허면?”

 “거처를 옮기시라 말씀입니다.”

 “허어.”

  

 우사는 의아해하였다. 그러나 그는 손아래 누이의 말에 사뭇 의존하여왔다. 오죽하면 제 권능으로 주어진 재주조차도 누이가 먼저 구름을 뿌리지 아니하면 좀처럼 부릴 줄을 몰랐다. 그가 어찌나 저어했던지 모처럼 외따로 비를 내려 보아도 땅것들에게선 여우가 시집갈 제 찍어내는 눈물이라 하여 제대로 비 취급도 받지 못하였다. 오죽하면 신랑도 아닌 각시비라 하겠느냐며 풍백은 호기로이 웃어젖히곤 했다. 우사는 그런 고우가 퍽이나 원망스러웠다. 어쨌거나 운사가 거처를 옮기자면 그래야 하는 이유가 있을 것이다.

  

 “알았다.”

  

 그는 순순히 끄덕이며 자리를 털고 일어섰다. 그러나 운사는 앉은 자리에서 미동도 없었다. 그녀는 오라비를 따라 눈길만을 천천히 들었다.

 우사는 그제야 그녀의 말 어딘가가 이상했음을 깨달았다.

  

 “가만. 꼭 내 홀로 옮기라는 듯 들리는구나.”

 “그러합니다.”

 “허어?”

  

 우사는 도로 자리에 앉으려 했다. 그러나 운사의 눈썹이 찡그려지는 것을 보며 그는 절반쯤 앉다 만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동안 황망해하다 다시금 몸을 곧추세웠다. 누이동생은 내려다보이면서도 전혀 기백이 줄지 않았다. 그녀는 더없이 당당했다. 본래 그러했고, 또한 그렇게 하는 것이 가장 효과적일 터였기 때문에.

  

 “풍백과 내기를 하였습니다.”

 “내기라고?”

 “예. 제가 졌습니다.”

 “무슨 내기인지는 모르나 드문 일이로구나. 헌데 그것과 조금 전 네 말이 무슨 상관이더냐.”

  

 운사는 일각의 뜸도 들이지 않고 바로 답했다.

  

 “도전(賭錢) 대신 오라버니를 걸었으니까요.”

  

 우사는 그저 눈을 깜박거렸다. 눈꺼풀이 사뭇 더디게 움직이는 것이 분명 단박에 알아듣지 못한 성싶었다. 과연 몹시 느릿느릿하게 우사의 눈썹이 추키어 올라갔다. 기껏 화를 낸 얼굴도 여전히 곱상하니 저래서야 사내 노릇은 글렀구나. 운사는 엉뚱한 데서 혀를 찼다. 우사가 화를 내느니 마느니 하는 것은 이미 안중에도 없었다. 구름도 바람도 없는 노릇에 고작해야 운사의 찻잔 안으로 쌉싸래한 비 서너 방울 떨구는 것이 전부였지만 우사는 버럭 내질렀다.

  

 “어찌 그런 것을 조건으로 걸 수 있더란 말이냐!”

 “하면 장군이를 주오리까?”

 “뭐?”

 “오라버니가 아니면 장군이를 달라 하는 것을.”

  

 돌연 말간 낮에 내리듯 희끄무레해진 얼굴로 우사는 말을 더듬었다.

  

 “나, 나는 네 오라비란 말이다!”

 “그러면 저더러 천둥도 부르지 못하는 구름이 되라 말씀입니까?”

  

 거기서 우사는 입을 다물었다. 그는 도시 누이에게 이길 수가 없었다. 그 말이 번번이 옳기도 하거니와 기세를 거스를 수 없는 탓이다. 그는 아주 가끔 저를 오라비로 점지한 한울을 원망했다. 차라리 윗누이기라도 했으면 억울하지나 않았을 것을.

 운사는 발이라도 동동 구르고 싶은 것을 체면 탓에 꾹 참고 있는 우사를 힐끗 올려다본 후 목소리를 높였다.

  

 “장군아!”

  

 우렁찬 부름에 우사는 선 자리에서 펄쩍 뛰었다. 멀찍이서 소년이 달려왔다.

  

 “예, 운사님.”

 “뫼셔다 드려라.”

 “예.”

  

 우사는 애꿎은 천둥을 원망스레 쳐다보았다. 운사는 기침소리 하나 내지 않았다. 더 이상 무안을 주다가는 다 된 밥상을 엎겠다고 난리를 부릴지도 몰랐다. 물론 그 난리야 전연 먹혀들지 않을 것이었지만. 어쨌거나 오라비를 여의는 심술은 그쯤으로 족할 터였다.

 마지막 면치레로 머뭇거리던 도포자락은 차마 쏟아 붓지 못하고 낙숫물처럼 뜨문뜨문 우적(雨滴)을 흩뿌리며 멀어졌다. 심중이야 어떻든 시무룩한 낯빛을 지은 우사를 위로하려는 모양인지 먼데서 장군이의 노랫소리가 더엉 더엉 들려왔다. 그것은 아득히 멀어지면서 천천히, 귓전에서 휘도는 분방한 바람 소리로 바뀌었다. 운사는 돌아보지 않은 채 입을 열었다.

  

 “모자란 오라비를 잘 부탁하네.”

 “고마움은 내 몫인 줄로 알지마는. 자네 여든한 번째 돌, 일부러 그 자리에 두었지.”

  

 그녀는 무심히 답했다.

  

 “답답하여서 원.”

  

 풍백은 씩 웃었다. 여느 때처럼 농조에 쾌하였으나 그의 번듯한 광대는 파르스름하니 어딘가 수줍어하는 것 같았다.

  

 “하면 나는 새 식구 맞이할 준비를 하러 가보아야겠군. 이거 늦지나 않을는지.”

 “경황이 없어 제 걸음 못 걸을 게야. 네 날음이면 앞지를 수 있어.”

  

 영령한 웃음소리가 사위를 울렸다. 날파람이 불었다. 고운 눈썹을 가볍게 찡그린 운사가 찰나에 허공으로 흩어진 구름머리채를 추스르고 났을 때, 풍백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二千十二年十月十八日.

 

 

 

 

 

* 이건 모다?

* 옹님 장군이랑 이쁜 사랑 하세여♥

* 그리고 생일 축하드립니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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