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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은 중요하지 않다. (…) 그가 세상에서 처음으로 불을 보았다고 하자. 그는 이렇게 말한다─ 「붉고, 양귀비와 같은 색깔을 하고 있지만, 그 속에서는 다른 색들이 춤추고 있다. 모양이 없지만, 물과 마찬가지로 어디를 향해서도 흘러간다. 따뜻하고, 여름의 태양 같지만, 그것보다도 따뜻하다. 그것은 잠시 동안 나무 조각 위에 존재하지만, 그 나무 조각은 뭔가에 먹힌 것처럼 곧 사라져 버리고, 검고 모래처럼 미세한 것을 남긴다. 나무가 없어지면 그것 또한 사라진다.」 그러므로 그 말을 들은 자들은 실체가 양귀비와도 같고, 물과도 같고, 태양과도 같고, 먹고 배설하는 것과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들은 그것이, 실체를 본 사내가 빗대어 말한 모든 물체와도 같은 것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그들이 불을 본 것은 아니다. 그들은 그것을 정말로 알 수는 없다. 단지 그것에 관해 알 수 있을 뿐이다. 그러나 불은 그 후에도 몇 번이나 세상에 나타난다. (…) 그리하여 그들은 이 새로운 것을 보고, 그것을 부르기 위해 새로운 말을 만들어낸다. 그들은 그것을 <불>이라고 부른다.
만약 그들이 아직 불을 본 적이 없는 자를 만나 불에 관해 언급하더라도, 그자는 그들이 무슨 말을 하고 있는지 모를 것이다. 그래서 이번에는 그들 자신이 불이란 무엇을 닮아 있는가에 대해 설명하게 된다. 그렇게 설명하는 동안, 그들은 그들 자신의 경험에 의해 그들이 말하고 있는 것은 진실 그 자체가 아니라, 진실의 한 부분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닫는다. 세상의 모든 단어가 그들 것임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말을 듣고 상대가 실체를 아는 일은 결코 없으리라는 사실을 깨닫는 것이다. 그것을 알기 위해서는 불을 보고, 그 냄새를 맡고, 그것에 손을 쬐고, 그 중심을 바라보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지 않는다면 영원히 무지한 채로 남아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불>은 중요하지 않다. <땅>도 <공기>도 <물>도 중요하지 않다. <나>도 중요하지 않다. 어떠한 말도 중요하지는 않은 것이다. 그러나 사람은 실체를 잊고 말을 기억한다. (…)
본질은 형태의 꿈을 꾼다. 형태는 사라지지만 본질은 남고, 다시 새로운 꿈을 꾼다. 사람은 이 꿈에 이름을 붙인 후 본질을 포착했다고 생각하지만, 자신이 비실재(非實在)를 불러일으키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다. 그대의 눈에 보이는 돌, 벽, 그대 주위에 앉아 있는 육체들은 각각 양귀비, 물, 그리고 태양이다. 이것들은 <이름 없는 것>의 꿈인 것이다. 원한다면 불이라고 불러도 좋다. (…)"
샘, 신들의 사회 中 (젤라즈니, 김상훈 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