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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OFC, OMC 주의
* 上편은 말머리와 크게 관계가 없습니다.
 
 
 
 
 
 
 
 
 
 
 “이번 의뢰의 대금입니다.”
  
  
 델은 손바닥위에 놓인 돈주머니의 무게를 가늠해보았다. 충실한 무게감이 약속한 금액대로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었다. 물론 안에 든 것이 금화가 아닐 가능성도 있지만, 그런 장난질을 하다가는 저쪽도 무사하지 못할 것이다.
  
  
 “의뢰인이 무척 만족했던 모양입니다. 가능하면 다음에도 또 부탁드리고 싶군요, 미스 그레이워즈.”
  
  
 그녀는 대답 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호리호리한 체구나 침잠한 성정과는 달리 목소리는 에누리 없이 외탁했다. 나쁠 것은 없지만, 아무래도 ‘이런 일’을 할 때에는 곤란하기 마련이라.
 걸어 내려온 계단을 고스란히 밟아 올라갔다. 문에 기대어 섰던 사내가 바깥에서 지상으로 통하는 문을 열어주었다. 흘낏 본 사내의 얼굴이 제법이라는 표정을 하고 있던 탓에 델은 조금 기분이 상했다.
 음습한 골목길을 굽이굽이 돌아 대로로 나섰을 때, 얼굴까지 가렸던 모래색의 복면과 망토는 간 데 없었다. 멀지 않은 곳으로 떠나는 여행자를 연상시키는 간편한 복장이지만 어디까지나 소녀다움은 잃지 않은 행색으로 변모하여, 금화가 가득 든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 허름한 바랑을 멘 채 멈춰선 곳의 간판에는 잔뜩 멋을 부린 금박 글씨로 「춤추는 드래곤」이라 적혀 있었다.
 왁자한 소리가 거리에까지 울려 퍼진다. 아마도 제피르 시티의 술집 중 유일하게 하루 종일 일 년 내내 시끌벅적한 곳일 터이다. 여관과 식당을 겸하고 있는 예사로운 주점이지만, 카운터에 올려놓는 금화의 무게에 따라 흥신소나 청부업소로 자유로이 변모한다는 것은 아는 사람들만 아는 이야기. 그리고 누구나가 알고 있는 것이 하나 있는데 그것은……
  
  
 “어이, 아델라!”
 “델이다.”
  
  
 문을 밀고 들어서는 순간 잡스런 소음을 뚫고 시원스레 인사가 날아들었다. 다른 능력은 의문의 여지가 있다 쳐도 목청만큼은 저쪽도 외탁을 했는지 일품이다. 심드렁하게 받아쳤지만 목소리 탓에 영 낭랑하기만 하다. 계산대로 다가가 바랑을 내려놓으니 쩔그렁 소리가 제법 묵직했지만 대개는 저들끼리 마시고 떠드느라 주의를 기울이지 않았고 시선을 주었던 치들도 잠시 뿐이었다. 「춤추는 드래곤」의 불문율, 계산대에서 벌어지는 일에 관심을 갖지 말지어다.
 등까지 내려올 법한 머리채를 한데 모아 묶어 올린 금발의 청년은 익숙한 일인 양 문답무용, 계산대 아래 어딘가에 바랑 째 던져 넣었다. 안에 든 금화의 무게를 생각하면 허술한 취급이지만 딱히 이의를 제기하지 않은 채 델은 의자에 반쯤 엉덩이를 걸치고선 가장 독한 흑맥주를 주문했다.
  
  
 “매번 하는 말이지만 너, 미성년자 주제에 술을 마셔도 되는 거야?”
 “매번 하는 말이지만 너, 미성년자 주제에 술을 팔고 있잖아?”
  
  
 그건 그렇지. 탄탄한 덩치 탓에 누구라도 이십대로 보기 마련인 실제 나이 열여덟의 시릴은 고개를 주억거리며 중얼거렸다. 대꾸 없이 맥주를 들이키는 그녀를 물끄러미 바라보던 시릴이 주방 쪽으로 사라지자 델은 그제야 고개를 들어 홀을 둘러보았다. 수상한 뜨내기를 찾아내는 경우도 있지만 대개는 소일 삼아 습관처럼 하는 관찰이다. 점심의 피크타임이 끝나가는 탓에 군데군데 빈 자리가 있었다. 대부분은 자주 보던 단골들이다. 특별한 손님은 눈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러고 있는 사이에 시릴이 돌아와 구운 소시지 접시를 그녀 앞에 내어놓았다. 둥글게 고루 구워진 훌륭한 모양새에 노골적으로 감탄사가 흘러나왔다. 가장 단순한 요리가 어려운 법이다. 처음으로 그가 구웠던 소시지는 한쪽은 타고 한쪽은 덜 익어 형편없었다. 그렇지만 ‘그런’ 부모 밑에서니, 원치 않아도 늘 수밖에 없었던 요리 솜씨다.
  
  
 “겨자 소스도 줘야지.”
 “대신 이걸 곁들여봐. 심혈을 기울여 개발한 드래곤 스테이크용 특제 소스다.”
  
  
 그렇다. 조금 전 시릴의 우렁찬 외침으로 잠시 끊겼던 회상이 다시 시작되었다. 다른 용무 없는 단순한 미식가에게조차 더할 나위 없이 훌륭한 곳인 이유! 주인 부부가 비정기적으로 직접 공수해 오는, 진짜라는 것은 의심할 나위 없고 그 맛도 일대를 평정할 정도로 찬란하기 그지없는 드래곤 고기. 스튜부터 튀김, 편육, 스테이크 등등에 이르기까지 원한다면 풀코스로 즐길 수 있어, 상상을 초월하는 가격에도 불구하고 수요에 비해 공급량이 턱없이 부족한 제피르 시티의 명물 요리이다.
  
  
 “여, 델.”
 “잘 지내셨어요, 아줌마?”
  
  
 반응을 알면서도 부러 불러보는 호칭이다. 예상대로 날아온 슬리퍼는 가볍게 피한 탓에 카운터 아래에서 마악 몸을 일으킨 시릴의 뒤통수에 화려하게 작렬했다.
  
  
 “여전히 형편없는 운동신경이네. 아저씨의 반만이라도 닮아, 시릴.”
 “이봐, 델. 너 큰일 날 소릴 한다. 섣불리 닮아선 안 돼. 운동신경 외의 다른 것이 닮아버리면 곤란하니까.”
 “그건 그러네요.”
  
  
 ‘운동신경 외의 다른 것이 닮아버리면 곤란한 당사자’는, 커다란 덩치와 그에 걸맞지 않는 화사한 금발로 더욱 눈에 띄는 용모에도 불구하고 델의 시야에 들어오지 않는 것을 보면 아마도 사냥을 나간 듯했다. 본인이 있다고 해서 딱히 꺼려할 것은 아니지만 어쨌든 만족스럽게 험담을 마친 타는 듯 붉은 머리칼을 가진 작은 체구의 여인은, 지극히 자연스럽게 델의 옆자리에 앉자마자 한 젓가락으로 소시지 반 접시를 해치웠다.
  
  
 “반값은 아줌마가 내시기예요.”
 “이, 모, 라고 부르라고 하지 않았니, 아델라아?”
  
  
 마찬가지로 이쪽이 싫어하는 이름을 일부러 강조해서 부르는 응수는 역시나 그녀답다. 그렇지만 델도 선뜻 고개를 끄덕이는 대신 푸르르 한숨을 내쉬며 지적했다.
  
  
 “리나 이모와 가우리 삼촌이 결혼을 한 거라면 콩가루 집안이잖아요.”
 “가우리는 아저씨라고 불러도 돼.”
 “……”
  
  
 깔끔하게 결론을 낸 리나는 카운터 너머로 상반신을 숙여, 조금 전 시릴이 던져넣은 바랑의 부피를 눈으로 가늠했다. 델에게는 아무래도 상관이 없는 일이었지만, 리나는 델이 받아오는 금화의 개수에 상당히 신경을 썼다. 델은 치장에 관심이 없었고, 검의 손질도 대개는 스스로 하거나 가우리의 손을 빌기 마련이었으므로 델의 숙식 및 생활 전반에 들어가는 비용을 춤추는 드래곤에서 대고 있었지만 돈은 언제나 넉넉하다 못해 남아돌았다. 마법에는 미처 숙달하지 못했지만, 델의 검 솜씨는 깔끔했다. 나이를 감안한다면 더욱. 피는 못 속이니까. 라고 리나는 말했지만 어째서 시릴이 그 모양인지에 대해서는 관자놀이에 핏대를 세우며 침묵을 지켰다.
 그러니까 그것은 남거나 부족하고의 문제가 아니라 아마도 상인의 핏줄을 가진 이로서의 본능일 것이다. 금화가 하나라도 모자랐다간 무사하지 못할 것이라고 독백했던 것은 물론 자신이 아니라 리나를 가리켜 생각한 것이었다.
  
  
 “그래, 이번엔 꽤 길었네.”
 “좀 까다로웠어요. 남장을 해야 했는데, 목소리 때문에.”
 “으하하, 네 목소린 정말 아멜리아랑 똑같거든.”
  
  
 스스럼없이 성왕국의 차기 여왕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에게서 델은 엷은 위안을 느낀다.
  
  
 “하지만 그 정도로 쩔쩔매다니. 델 넌 아직 멀었어. 똑같은 일을 훨씬 멋있게 해낸 녀석도 있었거든.”
  
  
 델은 알고 있다. 누구를 말할 때 그녀가 그런 표정을 짓는지. 리나는 그의 이름이나, 델과의 관계를 상기시키는 단어, 요컨대 ‘네 아버지’와 같은 호칭을 쓰는 적이 드물었다. 그것이 델의 기분을 배려해서인지, 아니면 자신 내키는 대로 하는 것인지는 몰랐으나 ‘그’ 혹은 ‘그 녀석’이라고 부르면서 짓는, 다소 쓴 것을 머금었을 때의 표정은 그녀가 누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는지 참으로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똑같은 일이라니…… 설마 여장을?”
 “뭐, 말하자면 그렇지. 아차, 비밀이려나, 이거.”
  
  
 청부업자 일을 하면서 포커페이스에는 제법 익숙해졌다. 그렇지만 지금은 여지없이 표정이 흐트러졌다. 그것을 리나는 재미있다는 듯이 보고 있었다. 리나와 가우리, 그리고 모친으로부터는 아주 가끔이었지만 전해 들었던 ‘그’의 이미지로 미루어볼 때 여장을 했었다는 것은 가히 충격적인 사실이다. 절대로, 절대로 그런 것을 했을 리가 없지만……
 달리 생각하면 그는 그런 일까지 불사할 정도로 찾고 있던 것을 간절하게 원했던 것이리라.
 언젠가 손재주가 좋은 가우리에게 어머니도 리나도 모르게 부탁한 적이 있다. 아버지의 얼굴을 그려줄 수 있느냐고. 리나의 말을 빌자면 아니 델이 직접 보기에도 그는 머리 뚜껑을 열면 뇌 대신 커스터드 푸딩이 들어 있을 사람이었지만, ‘네가 그런 얼굴로 부탁하면 별 수 없지’라며 순순히, 생각보다 훨씬 그럴듯한 러프 스케치를 즉석에서 그려주었다. 유일하게 갖고 있는 ‘아버지’의 초상화. 델은 항상 그것을 품고 다닌다. 그리워할만한 기억은 갖고 있지 않기에 그리움은 느끼지 않는다. 다만 어느 날엔가 마주치게 되면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까? 웃어야 할까? 울어야 할까? 검을 빼어들어 목젖을 겨누어야 할까? 왜 이렇게까지 어머니를, 나를 버려두어야 했느냐고. 그런 생각들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품 안에 갖고 다니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내가 내민 칼 따위에는 눈썹 한 올 꿈틀하지 않을 것이다. 정말로 강한 사람, 이라고 모두가 입을 모아 말했으니까. 그런데 왜 그들은 그렇게 말하면서 그런 슬픈 눈을 하고 있었을까. 가우리 아저씨랑은 누가 더 세요? 그렇게 물었을 때, 어머니는 웃으면서 대답했다. 검만으로 싸우면 정말은 가우리 씨가 이길 거야. 그렇지만 그런 강함이 아니란다.
 리나가 앞에 있기에 델은 품속에서 그림을 꺼내는 대신 머릿속으로 이미지를 떠올렸다. 그림 속의 남자는 가느다란 선을 갖고 있었다. 크지 않은 키, 호리호리한 몸. 얼굴에 박혀 있는 이물을 제외한다면 그것은 오히려, 남자가 아닌 소년의 얼굴이었다. 여장은 아마도 아주 잘 어울렸을 것이다.
  
  
 “그나저나 즉위식까지 앞으로 보름인가…… 슬슬 짐을 꾸려야겠어. 정말이지 가우리 녀석! 고작 번식기의 시 서펜트 암컷 한 마리에 왜 이렇게 오래 걸리는 거야!”
 “……꽤나 흉포하지 않아요, 그거.”
 “하지만 마마가 더 흉포하니까.”
  
  
 둔탁한 소리가 났다. 미처 피하지 못한 시릴 가브리에프가 계산대 너머에서 왕방울만한 뒤통수의 혹을 움켜쥔 채 눈물을 글썽이는 것을 보며, 델은 도대체 어느 정도로 단련이 되면 고작 얇은 슬리퍼 한 짝이 저 정도의 파괴력을 낼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어차피 피하지도 못할 건데 왜 매를 벌어?”
 “파파한테서 물려받은 건 매 버는 재주뿐이거든!”
 “퍽이나 자랑스럽겠다.”
  
  
 퉁명스럽게 쏘아붙이며 델은 고개를 돌렸고, 남은 소시지를 마저 먹어치운 리나가 그녀를 향해 윙크를 날리는 것을 의도치 않게 보게 되었다. 소시지 값을 내지 않게 되어서 다행이라 해야 할지. 델은 고개를 저으며 김이 다 빠진 흑맥주를 들이켰다. 그녀는 춤추는 드래곤에서 유일하게 공짜로 먹을 수 있는 안주거리인 팝콘을 한줌 입에 털어넣고는 막 자리에서 일어서려는 리나를 향해 무심히 질문을 던졌다.
  
  
 “두 분은 역시 가실 거죠?”
 “뭐야? 그 자긴 안 간다는 듯한 말투는.”
 “고민하고 있어요.”
 “고민해야 할 이유가 있어?”
 “공식적으로 저는 아무 것도 아닌걸요.”
 “아무 것도 아닌 아이에게 아델라이데 일 티파 세일룬이라는 이름을 붙여주진 않아.”
  
  
 1년에 한 번이나 부를까 말까 한 이름을 말할 때에, 리나의 목소리는 카운터 너머의 시릴도 알아듣기 힘들 정도로 극히 낮아져 있었다.
  
  
 “델 그레이워즈예요.”
  
  
 말을 하면서도 거의 움직이지 않아 마치 일자로 다문 것처럼 보이는 델의 입술은 조금 건조해 보였다.
 역시나 싶은 반응에 리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무표정했지만 왠지 모르게 부루퉁해 보이는 표정에 볼을 꼬집어주고 싶은 기분이 들었지만, 기분에 따르는 대신 리나는 델의 어깨를 툭툭 치며 놀리는 것인지 위로하는 것인지 알 수 없는 말투로 최후의 일격을 날렸다.
  
  
 “아멜리아는 평생 결혼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넌 언젠가 여왕이 되겠지.”
 “……그건 죽기보다 싫은데요.”
  
  
 어디가 그렇게 우스웠는지 리나는 배를 잡고 으하핫, 한바탕 웃음을 터뜨렸다.
  
  
 “젊다는 건 좋은 거지! 난 손님이 있어서 이만 실례할 테니까. 참, 그리고 마법도구상에 주문해둔 물건 지금쯤 도착했을 테니 시릴한테 돈 받아서 찾아와. 시릴! 넌 내 테이블로 멧돼지 샤브샤브 2인분, 흰 늑대 갈빗살 구이 1인분, 조금 전의 소시지 구이 곱빼기로 한 접시, 그리고 따뜻한 우유 한 잔 가져와!”
 “으엑. 설마 그 마지막 거 마실 거예요?”
  
  
 리나는 못 들을 것을 들었다는 투로 묻는 시릴에게 대답하는 대신 다시 한 번 호탕하게 웃어젖혔고, 자리에서 일어나서 어딘가를 향해 걷기 시작했다. 주방으로 들어간 시릴이 그다운 목청으로 주문을 전달하는 것이 들려왔다. 금방 나오지 않는 것을 보니 아마 본인은 소시지를 굽고 있는 모양이었다. 델은 남은 흑맥주를 목구멍에 털어넣으며 눈으로 리나의 뒷모습을 좇았다. 불꽃처럼 붉은 머리칼이 나부끼며 홀을 가로지르고 있었다. 좀 전보다 사람이 더 줄어 그녀의 뒷모습은 제법 튀었다. 그렇지만 주인장, 하고 인사를 건네거나 심지어 눈길조차 주는 사람이 없는 것을 보니 그녀는 굳이 눈에 띄고 싶지 않은 모양이었다. 그럴 경우, 바로 눈앞에서 그녀가 지나가고 있는데도 보통 사람은 그녀를 잘 인식하지 못했다. 그것은 기척을 숨긴다거나 마법을 사용해서 상대에게 환술을 거는 것과는 조금 달랐다. 델은 그 기술을 무어라 불러야 할지 몰랐다. 가끔 눈치채지 못할 때에는, 마치 그녀가 순간이동을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는 희한한 재주였다. 나이를 먹다 보니 이런 것만 늘었지 뭐야. 하고 언젠가 리나가 머리를 긁적이던 것이 생각났다.
 리나가 향한 곳은 홀의 정중앙에서 약간 벗어난 곳에 있는 4인용 원탁이었다. 벽 가장자리에는 오붓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도록 간단한 칸막이가 설치되어 있는 2인용 자리들이 마련되어 있지만, 처음 들르는 사람이라면 한 번쯤 진짜냐고 묻기 마련인 각종 드래곤 머리 장식들이 걸려 있는데다가 흔치 않은 칸막이가 있어 오히려 시선을 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은 그 자리를 애용하는 풋풋한 연인들뿐이다. 따라서 리나가 방금 앉은 곳은 오히려 눈에 덜 띄는 자리이다. 그리고 실제로, 델은 그 자리에 누군가가 이미 앉아 있다는 사실을 지금에서야 처음 깨달았다.
  
  
 ‘……?’
  
  
 분명 자신은 조금 전에 홀을 둘러보았다. 물론 낯선 얼굴들도 몇몇 보았지만 신관 복장을 한 단발머리 남자는 보지 못했었다. 물론 그가 문으로 들어오는 것을 본 기억도 없다. 카운터에 앉아 있었으므로 문이 열리는 것은 곁눈으로도 알 수 있기에, 그는 자신보다 먼저 이 가게에 들어와 있었고 자신이 그를 눈치 채지 못했다는 편이 가능성이 높다. 어느 쪽이나 믿을 수 없기는 마찬가지이다. 기척을 알아채는 것이나 사람의 용모를 기억하는 것 등은 청부업자의 필수 교양이기 때문에 델이 이따금 홀을 둘러보는 것에는 가벼운 훈련의 의미도 있는 것인데, 하여 델은 제법 충격을 받았다. 그 남자의 맞은편에 리나가 앉았을 때, 델은 리나의 뒷모습에 가려져 보이지 않던 그의 시선이 자신을 향해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리고 그는 그녀를 향해 웃었다.
 온 몸이 뻣뻣하게 굳는 동시에 델은 수백 마리의 지네가 살갗을 타고 기어가는 것 같은 소름끼치는 불쾌감을 느꼈다. 남자와 자신이 시선을 교환한 것은 찰나에 불과했지만, 그가 리나를 향해 고개를 돌린 후에도 그 불쾌감은 좀처럼 가시지 않았다.
 탁.
 묵직한 것을 내려놓는 소리가 주문처럼 그녀의 경직을 깨뜨렸다. 델은 자신도 모르게 깊게 한숨을 내쉬고는, 의아한 표정으로 자신을 바라보고 있는 시릴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왜 그래, 아델라?”
 “……아무 것도. 그리고 델이라니까.”
 “그래, 그래. 이건 물건 값이야. 아슬아슬하게 맞췄으니까 조금 부족하지도 모르겠지만, 혹시 그럴 경우에는 에누리하라는 말씀이 있으셨다. 흥정이 잘 안 되면, 알지? 마마의 이름을 빌리는 거. 그리고 여기, 소시지 네 것도 구웠으니까……”
 “고마워. 하지만 다녀와서 먹을래.”
 “응? 어, 그러던지.”
  
  
 소시지 식을 텐데. 중얼거리며 무심결에 시선을 준 아직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소시지가 두 번이나 주인을 잃은 까닭에 어쩐지 무안해하는 것처럼 보여, 시릴은 어느 사이엔가 휭 하니 사라진 델 대신 포크를 들어 한 점을 입에 넣었다. 조금 전 델의 표정이 묘하게 일그러져있던 것에 생각이 미치자, 아무래도 새로 개발한 드래곤 스테이크용 소스의 신맛이 좀 부족한가보다 싶어 시무룩해지려던 그는 델이 소스를 맛본 적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목 언저리가 근질거렸다. 무언가가 어그러져 있을 때,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느껴지는 감각. 그러나 그 미묘한 위화감은, 그 직후 카운터를 불태울 기세로 이쪽을 쏘아보고 있는 리나와 눈이 마주친 탓에 금세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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