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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버포스 덤블도어는 더할 나위 없이 평화로운 오후를 보낼 수 있었다.

 식탁 맞은편에 앉아, 알버스의 몫으로 차린 식사를 천연덕스럽게 제 입으로 집어넣고 있는 금발머리의 불청객이 아니었더라면.

 목구멍까지 올라온 면박을 삼키기를 수차례. 그 순간 아리애나가 입을 열지 않았더라면, 애버포스는 싸우지 말라는 알버스의 당부를 무시하고 그에게 날 선 말을 쏘아붙였을 것이다.

  

  

 “앱, 아리애나는 양배추가 싫어.”

 “전적으로 동감이야. 당근이라든지 호박이라든지, 더 맛있는 주스를 만들 재료가 얼마든지 있는데 왜 앱은 매일 맛없는 양배추주스만 고집하는 걸까. 그렇지, 아리애나?”

 “응, 앱의 양배추주스는 맛이 없어! 알이 만든 건 사과가 함께 들어가서 맛있는데……”

 “맞아.”

 “으…… 진짜! 맛이 없으면 먹지 말던가!”

  

  

 기다렸다는 듯이 입을 모아 네에, 라고 대답하는 두 사람을 보고 있노라니 애버포스는 어쩐지 관자놀이가 지끈거려오는 듯한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그린델왈드, 날 앱이라고 부르지……”

 “아── 알이 보고 싶다. 그렇지, 아리애나?”

 “응!”

  

  

 겔러트가 애버포스를 애칭으로 부르는 것은 결코 친근감이나 애정의 표현이 아니었다. 지치지도 않고 매번 울컥하는 애버포스의 반응을 그는 재미있어했고, 때로는 앱, 하고 부르는 그 억양에 노골적으로 조롱이 깃들어있기도 했다. 아리애나는 차치하고라도 알버스가 그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것이 애버포스는 못내 짜증스러웠다. 겔러트는 알버스가 있을 때에는 없을 때와 그만치 딴판으로 굴었던 것이다.

 점심식사를 막 차리려던 때에 들이닥친 바틸다 백셧은 식탁에 앉지도 못한 알버스를 데려가고 대신 이 불청객을 떨구어놓았다. 그 때 애버포스는 한 차례 인상을 찌푸리고는 알버스의 접시, 다시 말해 겔러트 몫으로 바뀔 접시로 기울려던 국자에서 스프를 몽땅 덜어낸 후 멀건 국물만 다시 떠내 접시에 부었다. 덕분에 혜택을 본 것은 평소보다 버섯이 두 배나 더 들어간 스프를 먹게 된 아리애나였다. 양배추주스 때문에 잠시 풀이 죽기는 하였으나, 먹지 않아도 된다는 애버포스의 허락이 본의 아니게 떨어진 이상 그녀에게 더 이상 거리낄 것은 남아있지 않았다. 한껏 들뜬 얼굴로 바지런히 버섯을 떠먹다 말고, 문득 그녀는 겔러트를 향해 동그란 얼굴을 들었다. 조금 전 그와 나눈 대화가 그녀 머릿속을 가득 점령한 버섯 사이에서 빠끔, 고개를 내밀었던 모양이다.

  

  

 “겔러트, 겔러트는 알을 좋아해?”

 “아주 좋아하지.”

 “응, 아리애나도 알을 좋아해. 알은 다정하고, 아리애나가 모르는 것도 많이 알고 있거든.”

 “맞아. 아리애나는 역시 나랑 통하는 데가 있구나. 알버스는 다정하고, 똑똑하고, 그리고 거기에 덧붙여 섹시하기까지 하지.”

  

  

 풉. 애버포스의 입에서 뿜어져 나온, 스프와 빵이 뒤범벅되어 몹시 불쾌한 형상을 지닌 덩어리들이 순식간에 식탁을 뒤덮었다.

  

  

 “으앙, 앱 바보──”

  

  

 아리애나는 울상을 짓고 애버포스를 나무라느라 ‘섹시하다’는 단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물어보는 것을 잊어버렸다. 후들거리는 손으로 지팡이를 휘둘러 엉망이 된 식탁을 정리하면서도, 애버포스는 그것이 참으로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식탁이 간신히 눈 뜨고 봐줄 만한 상태로 돌아왔을 때, 애버포스는 한숨을 쉬며 지팡이를 거둔 후 맞은편의 겔러트를 노려보았다. 참사의 원인을 제공한 장본인은 한껏 여유로운 얼굴로 토스트에 벌꿀을 바르고 있었다.

  

  

 ‘무슨 헛소리를 하는 거야, 어린애 앞에서.’

  

  

 차마 소리 내어 말은 못하고 입만 뻥긋거리는 애버포스를 향해 겔러트는 가볍게 어깨를 으쓱해보였다. 보란 듯 부아를 돋우는 그 표정이 얄미워, 애버포스는 식탁 아래로 겔러트의 정강이를 겨냥해 있는 힘껏 발길질을 했다. 그러나 어떻게 눈치 챘는지, 겔러트는 가볍게 다리를 들어 올려 애버포스의 발길을 가볍게 피해버리고는 더할 나위 없이 상냥한 얼굴로 아리애나에게 벌꿀을 다 바른 토스트를 건네는 것이었다.

  

  

 “자, 아리애나. 앱이 아리애나의 토스트를 엉망으로 만들어놓았으니, 대신 내 것을 줄게.”

 “정말?”

  

  

 시무룩해져있던 아리애나의 얼굴에 단박에 웃음꽃이 피는 것을 보며, 애버포스는 이미 통째로 가로채인 것과 크게 다를 바 없는 형에 이어 여동생의 환심마저 빼앗기게 될지도 모른다는 예감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애버포스는 체념하듯 어깨를 늘어뜨렸고, 아리애나에게 줄 새 토스트를 굽고 있던 지팡이를 팬으로부터 거두었다. 그는 아리애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녀는 토스트를 먹는데 열중하고 있었다. 처음에는 불안한 눈으로 애버포스를 힐끔거렸으나, 한참이 지나도 애버포스가 입에 음식을 넣을 기미를 보이지 않자 안심한 듯했다.

 애버포스는 한 차례 심호흡을 한 후 천천히 입을 열었다. 조심스럽기는 했으나, 아리애나는 어차피 이 대화를 이해하지 못할 것이었다.

  

  

 “이봐, 그린델왈드. 내 질문에 하나만 대답해줬으면 좋겠어. 진지하게.”

  

  

 겔러트의 푸른색 눈동자가 애버포스를 향했다.

  

  

 “얼마든지, 앱.”

 “앱이라고…… 됐어. 그나저나 대체 무슨 속셈이야?”

 “앱, 유감스럽게도 난 아직 레질리먼시를 완전히 익히지 못했거든. 앞 뒤 다 자르고 그렇게만 물어보면 알 수가 없잖아.”

 “내가 ‘진지하게’라고 말했지? 내 질문을 이해했다는 거 알아. 대답이나 해.”

  

  

 짜증 섞인 독촉에도 불구하고 겔러트는 애버포스를 말없이 응시하고 있었다. 바로 받아치지 않는 것이 의아하여 애버포스가 새삼 겔러트를 다시 보았을 때, 새파란 눈동자 어디에선가 섬광 같은 것이 번뜩인 것 같았다. 썩 유쾌하지 않은 감각이 전신으로 스멀스멀 퍼져나가는 것을 느끼며 저도 모르게 어깨를 움츠리는 애버포스에게, 겔러트는 마치 옛날이야기를 하는 것처럼 한가로운 어투로 대꾸했다.

  

  

 “별로 유쾌한 대답은 아닐 텐데.”

 “상관없어. 어차피 네 존재 자체가 유쾌하지 않으니까.”

 “거침없군. 하긴 피차일반이니까 상관없나.”

  

  

 애버포스는 얼굴을 찡그렸다. 역시, 알버스가 없을 때의 겔러트는 꽤나 노골적이었다. 애버포스에게와는 달리 아리애나에게는 상냥한 그였지만, 그가 아리애나에게 호의를 갖고 있다는 생각은 자신에게 그러하다는 생각만큼이나 애버포스에게 얼토당토않은 것으로 여겨졌다. 말하자면 그의 상냥함은 마치 딱 들어맞는 가면을 하나 뒤집어쓴 것 같았다는 이야기이다.

  

  

 “알버스는 아주 사랑스러운 녀석이야. 가능하다면 정말로, 내가 네 매형이 되면 좋겠다고 생각할 정도로. 물론 그 관계의 진전은 우리 둘만 놓고 본다면 그다지 유쾌한 방향인 건 아니겠지만.”

  

  

 아주 생각하지 못한 것은 아니었지만, 꽤나 엉뚱하고 파격적인 답변이었다. 그러나 애버포스는 웃을 수가 없었다. 겔러트의 표정은 무섭도록 온화했다. 애버포스는 부드럽게 미소를 짓고 있는 미형(美形)의 얼굴이 주는 위화감을 도저히 견딜 수가 없었다. 그 웃고 있는 근육 아래에서 꿈틀거리고 있는 감정의 색채를, 애버포스로서는 알아낼 도리가 없었고 실은 알고 싶지도 않았다.

  

  

 “맙소사, 알버스를 동성애자로 만들 셈이야? 대체 그를 어디까지 끌어내리려는 거야?”

 “난 알버스의 성적 취향에는 관여하지 않아. 단지 내가 그를 좋아하는 만큼 그도 나를 좋아하기만 하면 돼. 그러니까 결국, 나만 좋아하면 된다는 거지.”

  

  

 순식간에 쏴아, 그림자가 드리운 것 같았다. 길쭉하게 남겨놓은 토스트 가장자리로 스프를 찍어 먹는 일에 열중하던 아리애나마저 일순간 고개를 반짝 들고 두 사람을 보았을 정도로.

 애버포스는 마른침을 삼키고는, 목구멍으로부터 쥐어짜듯 말을 뱉어냈다.

  

  

 “……미쳤어.”

 “그럴 수도 있지. 하지만 그건 전적으로 알버스 탓이야. 앱, 아까 네가 멋진 말을 했었지. 그를 ‘끌어내린다’고 말이야. 그건 굉장히 훌륭한 표현이었어. 눈앞에 그런 존재가 있다면, 꼭 끌어내려보고 싶은 것이 사람의 마음인 거야.”

 “그 따위 구역질나는 소릴 지금 진심으로 지껄이고 있는 건 아니겠지?”

 “글쎄, 어떨까.”

 “그렇게 되도록 내가 놔둘 것 같아?”

 “이런, 앱──”

  

  

 자신의 애칭을 부드럽게 부르는 그 목소리보다도, 어느 사이엔가 그 손에 들려있는 지팡이 탓에 애버포스는 흠칫 놀랐다. 거의 무의식적으로, 그는 자신과 나란히 앉아있던 아리애나와 겔러트의 사이를 가로막으려는 듯한 몸짓을 보이며 재빠르게 식탁 위에 놓았던 지팡이를 집어 들었다.

 엑스펠리아르무스. 크지 않은 목소리가 물 흐르듯 내뱉은 주문에, 애버포스의 손에서 빠져나간 지팡이가 휙 날아 바닥으로 떨어졌다. 떨그럭, 하고 제법 크게 울린 소리에 아리애나가 깜짝 놀라 숟가락을 접시로 떨어뜨리고는 사방으로 튄 스프를 보고 이내 울상을 지었다. 그러나 애버포스는 그녀를 다독여줄 겨를이 없이, 그저 불꽃처럼 새파랗게 일렁이는 두 눈에서 시선을 떼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쓸 뿐이었다.

  

  

 “지금 이 자리에서 너희 둘에게 기억력 수정 마법을 걸고 알버스를 데리고 도망치는 것쯤은 아주 간단한 일이지. 내가 그렇게 하지 않는 것은 결코 너희 둘 따위를 생각해서는 아니야. 그 정도는 알고 있지, 앱?

  

  

 의자에서 일어선 겔러트가 느릿느릿 말을 뱉으며 제 앞까지 걸어왔을 때, 석상처럼 굳어있던 애버포스는 한 발 늦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가 저만치 마루 위에 나가떨어진 자신의 지팡이 쪽으로 힐끗 시선을 던지는 것과 동시에, 겔러트는 애버포스의 이마를 지팡이 끝으로 가볍게 건드렸다.

 애버포스는 한쪽 입꼬리를 끌어올리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안면 근육이 경직된 탓에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부단한 노력 끝에 그는 마침내 비뚜름하게 웃는 얼굴을 만들어내고 입을 열 수 있었다.

  

  

 “하, 드디어 본색을 드러내시는군.”

  

  

  

 * * *

  

  

  

 “다녀왔……”

  

  

 문을 열고 들어서는 순간 알버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겔러트의 멱살을 잡고 있는 애버포스와, 그런 애버포스의 턱밑에 지팡이를 겨눈 겔러트였다.

  

  

 “너흰 대체 왜 이렇게 치고받고 싸우는 거야? 잠깐만 자리를 비우면 이렇게 된다니까!”

 “알!”

  

  

 식탁에서 발딱 일어난 아리애나가 총총걸음으로 달려와 알버스에게 안겼다. 허리를 숙여 보드라운 정수리를 쓰다듬으며, 그녀의 표정에 이렇다 할 근심이 없기에 알버스는 그것이 딱히 심각한 싸움은 아니었던 모양이라고 알아서 결론을 내렸다. 실제로 자신의 얼굴을 보자마자 두 사람은 그 즉시 서로에게서 떨어져 제 자리로 돌아갔다. 식탁으로 돌아간 겔러트는 태연하게 자리에 앉아 다시 식사를 시작했고, 애버포스는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지팡이를 주우러 갔다. 등을 돌리고 있어, 애버포스의 표정은 알버스에게는 보이지 않았다.

  

  

 “안녕, 우리 공주님. 두 바보들이랑 같이 있느라 피곤했지?”

 “응!”

  

  

 알버스의 말에 딱히 이의를 제기하는 법이 없는 아리애나인지라 무턱대고 대답한 것이었으나, 아무 것도 모르는 두 사람이 나눈 것이 제법 핵심을 찌른 문답이었기에 겔러트와 애버포스는 제각기 쓴웃음을 지었다.

  

  

 “그런데 알, ‘매형’이 뭐야?”

 “응?”

  

  

 빠르게 알아듣지 못한 알버스가 되물었다. 애버포스는 등줄기로 식은땀이 흐르는 것을 느꼈다.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당황한 것은 겔러트도 마찬가지였지만, 그는 애써 태연함을 가장한 채 의자에 앉은 자세 그대로 발끝을 까닥였다. 그것이 겔러트가 불안할 때 곧잘 하는 몸짓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의 시선은, 초롱초롱한 눈으로 저를 올려다보며 물어오는 소녀를 향해 있느라 그 부산스런 발놀림을 볼 겨를이 없었더랬다.

  

  

 “있잖아, 그리고 ‘섹시하다’가 무슨 뜻이야?”

 “……뭐?”

  

  

 그랬다는 이야기.

 

 

 

 

 

20120227. Fin. BGM : AbSolitude (SoundTeMP / Ragnarok Online)

 

 

 

 

 

* 작가 공인 그린덤블 믿으세요. 겔러알버 믿으세요. 두 번 믿으세요. 공식(?) 명칭도 있습니다 그린델도어.

킬 하이르 퀘 다시 해 보고 싶다.

* 원작에서 제일 좋아하는 건 앱 할아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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