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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음악의 음도 모르는 사람이 쓴 음악학원 배경 패러렐

* 허술한 전개 주의

 

 

 

 

 

 

 

 

 

 

 드레이코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피아노실 앞을 지날 때였다.

 그의 발길을 붙잡은 것은 장소에 걸맞지 않게, 유려하게 울리다 돌연 끊어지기를 되풀이하는 소리가 아니라 가느다란 유리창 너머로 보인 붉은색이었다. 즉 청각으로 감지한 대상이 아니라 시각에 의해 포착된 대상이었다는 이야기다.

 걸음을 멈춘 것과는 달리, 드레이코는 그 붉은색이 시야에 들어오자마자 대번에 미간을 찌푸리고는 혀를 쯧, 찼다. 슈베르트 피아노 소나타 제21번 D.960 4악장. 가느다란 손가락은 격정적인 코다에 돌입하여 힘껏 화음을 내리꽂다 말고 머뭇거리며 멈추기를 수차례 반복하고 있었다. 연주가 좀처럼 제 뜻대로 되지 않을 때 그러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였으나, 단지 문 너머에 앉아 있는 것이 타는 붉은 머리에 마른 손을 가진 론 위즐리라는 것만으로 드레이코의 마음에서는 대번에 짜증스러운 감정이 활짝 솟아오르고 마는 것이었다.

  

  

 “……흥.”

  

  

 그 심란해하는 것 같은 뒷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치면서도 어쩐지 드레이코는 쉽게 걸음을 뗄 수가 없었다. 복도에 딱 달라붙은 것처럼 움직이지 않던 발은, 퍼뜩 문 너머의 그가 자신이 가장 싫어하고 증오해 마지않는 바이올린과의 동기생이고 라이벌인 해리 포터의 둘도 없는 친구이자 반주자라는 사실이 떠오르고 나서야 비로소 움직이기 시작했다.

 해리 포터. 그랬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아주 명백하고 적나라하게 해리 포터를 싫어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세계를 돌며 순회연주를 하고 있을 불세출의 바이올리니스트 제임스 포터와 피아니스트 릴리 포터의 아들이라는 것만으로 입학할 때부터 주목을 받았던 그는, 드레이코의 호의적이지 않은 시선으로 보기에도 확실히 뛰어난 재능의 소유자이기는 했으나 한편으로는 그에게 쏟아지는 크나큰 관심과 그 기재에 대한 찬사가 값어치를 한다 할 정도로 뛰어나 보이지는 않았기 때문이다. 유산처럼 전해오는, 포터 가에 대한 말포이 가의 적개심도 그 미움에 다소 보탬이 되기는 하였으나.

 드레이코는 느릿하게 멀어지다 어느 순간 들리지 않게 된 론의 연주를 다시 한 번 머릿속으로 따라 그렸다. 론 위즐리, 호그와트 음악원에 무려 네 명이 존재하는 위즐리 중의 한 명이었다. 위로 두 형과 아래로 여동생 하나, 그들의 아버지가 문화매체체육부에 근무하는 평범한, 다시 말해 썩 부유하지 않은 공무원이라는 것은 공공연하게 알려진 사실이었고 이미 졸업한 세 명을 포함해서 여섯 남매가 호그와트 음악원에서 전액 장학금을 받았다는 사실도 모두가 알고 있었다. 그러니까, 저 론 위즐리를 제외한 모두가 말이다.

 ‘유일하게 장학금을 받지 못하는 위즐리’ 외에 그에게 붙은 칭호가 하나 더 있다면, 그것은 ‘그 유명한 해리 포터의 가장 친한 친구’라는 칭호였다. 그저 고정 반주자에 불과할 뿐이지 않느냐고 두 사람 사이의 관계를 깎아내리는 이들도 있었으나, 그러기에는 그들은 확실히 더할 나위 없이 친밀했다. 비올라과에서 이론과 실기를 통틀어 수석을 도맡아 하고 있는 헤르미온느 그레인저까지 포함하여, 사람들은 그 돈독한 우정을 일컬어 그들이 함께 속해 있는 기숙사 동 이름을 붙여 그리핀도르의 삼총사라고 불렀다.

 호그와트의 유명세를 독차지하고 있는 해리 포터와 누가 보아도 재원(才媛)인 헤르미온느 그레인저, 그리고 그저 그런 평범한 피아노과 학생인 론 위즐리. 어찌 보면 뒷말이 나오는 것은 당연했다. 드레이코 역시 무리지어 다니는 그들을 해리 포터를 싫어하는 것만큼이나 싫어했지만 그것은 세 사람, 특히 론 위즐리에 대해 쑥덕공론을 늘어놓는 무리들과는 다소 다른 과정을 거친 감정의 결과물이었다.

 누구라도 그 광경을 보았더라면 자신처럼 생각하지 않고서는 못 배겼으리라고 드레이코는 확신했다. 마치 누군가 그렇게 생각하도록 조종하고 있는 것처럼, 자신의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그렇게 느낄 수밖에 없게 되는 기분. 그 터무니없는 강제력이 가장 닮아 있는 것은 그 이름을 떠올리려고 하는 시도조차 드레이코의 기분을 거북하게 만들어 버리는 어느 하나의 감정이어서, 자신의 명석함을 자부하는 드레이코 자신도 차마 거기까지는 인정하지 못하고 빙글빙글 제 마음을 에둘러 다니며 신경질을 부리고 있는 것이었다.

 어느 초여름의 저녁이었었다.

 해가 슬슬 길어지기 시작하여, 종전 같았으면 벌써 깜깜해졌을 교정은 반은 파르스름하고 반은 발그레하게 물들어 있었다. 어쩌면 그 빛 때문이었는지도 몰랐다. 오늘과 똑같은 슈베르트 제21번 4악장, 그 아름답고도 고독한 소리들이 어슴푸레한 빛으로 가득 찬 허공을 또르르 굴러갔었다. 그 소리, 가늘어 뼈가 도드라진 탓에 어쩐지 위태롭게 건반 위를 가로지르는 것 같았던 손가락, 아니 지평 너머로 모습을 감추기 직전인 석양보다 훨씬 더 새빨간 정수리에서부터 까닥까닥 움직이는 발끝까지 모든 것이 영롱하게 빛나고 있었다. 자신이 피아노를 공부할 적에 지치도록 즐겨 쳤을 정도로 좋아하는 악장이었기 때문이라고, 단지 그렇게 이유를 붙이기에는 너무나도 눈부시도록. 어찌 된 영문인지 시큰해지려는 콧날에 가만히 손가락을 얹으며, 드레이코는 조용히 마음속으로 물었었다.

 정말로 상대를 이용하고 있는 것은 누구란 말인가?

 ‘위즐리가 포터의 명성에 빌붙는다’고 모두가 말한다. 그러나 론이 해리의 반주를 하고 있을 때 그를 눈여겨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다시 말해, 론과 함께 연주할 때 해리는 분명히 찬사를 받았으나 그것을 론의 입장에서 혜택이라고 말할 수 있는지는 분명치 않았다. 그리고 드레이코는 보았던 것이다.

 해리의 곁이 아닌 곳에서 반짝반짝 빛나고 있는 론을.

 드레이코는 앙다문 입술을 지그시 눌렀다. 그것은 그 여름날을 다시 떠올린 여파 때문이기도 했고, 노르스름하게 잎을 물들여가는 플라타너스 근처의 벤치에서 헤르미온느와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해리를 보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드레이코가 그들에게로 다가간 것은 팔 할은 충동에 의한 행동이었다.

 라틴어와 이탈리아어가 빼곡히 적혀 있는 교과서 위로 그늘이 드리우자, 해리와 헤르미온느는 나누던 대화를 중단하고 일시에 고개를 들었다. 자신의 눈앞에 똑바로 서 있는 드레이코를 올려다본 해리의 미간이 절로 좁아졌다. 헤르미온느는 노골적으로 싫은 내색을 하지는 않았으나, 탁 소리가 나도록 교과서를 덮는 것으로 자신의 감정을 표현했다.

 막상 그 앞에 서기는 하였으나, 다분히 충동에서 비롯되었던 만큼 할 말은 바로 떠오르지 않았다. 그 때문이었다. 자신조차 예상하지 못했던 말을 내뱉은 것은.

  

 

 “이번 가을 정기공연의 독주는 위즐리와 함께 하겠어.”

  

  

 해리의 미간이 더욱 좁아졌다. 한편 헤르미온느는 말도 안 돼, 라든가 누구 마음대로, 혹은 그와 비슷한 말을 하려는 듯한 모양새로 입을 조금 벌렸다가 이내 꾹 다물어버렸다. 응수를 하는 것조차 부질없을 정도로 얼토당토않게 여겨졌던 것이리라. 대꾸 없이 한동안 드레이코를 올려다보던 해리는 이윽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헤르미온느의 반응보다 해리의 그 여유가 드레이코의 심기를 더욱 건드렸다.

  

  

 “어떤 위즐리?”

  

  

 론의 쌍둥이 형인 프레드와 조지는 첼로, 그리고 여동생인 지니는 지휘를 전공하고 있었다. 따라서 드레이코가 언급한 위즐리는 론 외에는 있을 수 없었고, 해리 역시 그 사실을 아주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다. 부러 묻는 기색이 역력한 해리의 얼굴을 내려다보며 드레이코는, 고함을 지르려는 것을 꾹 참아 한층 더 나직해진 목소리로 대답했다.

  

  

 “론 위즐리.”

 “흠.”

  

  

 금방 반응하지 않는 해리를 헤르미온느가 힐끗 쳐다보았다. 총명한 그녀는 그 미적지근함을 빠르게 이해했고, 그래서 둘 사이의 대화 같지 않은 대화에 끼어드는 것을 그만두고서 한층 느긋해진 몸짓으로 교과서를 다시 펼친 후 시선을 종이 위로 떨어뜨렸다.

  

  

 “론이랑 이야기는 된 거야?”

  

  

 짧은 침묵 후 내던져진 질문에 드레이코는 잠시 망설였다. 물론 근 며칠, 아니 몇 주 동안 드레이코와 론은 반주는커녕 그 어떤 주제로도 대화를 나눈 적이 없었다. 드레이코와 해리가 시비가 붙어 날 선 말을 주고받을 때 해리를 거들기 위해 론이 한두 마디씩 내뱉곤 했던 것을 대화라고 친다면 모르겠지만.

 곧장 들통 날 거짓말은 하지 않는 것이 낫다고 판단한 드레이코는, 결국 솔직하게 대답했다.

  

  

 “아직.”

 “그럼 지금 네가 한 말을, 여태까지 숱하게 나한테 걸어왔던 번거롭고 쓸데없는 시비의 일환으로 치부해도 되겠지, 말포이?”

 “네가 어떻게 생각하든 관심 없어, 포터. 위즐리와 이야기가 되면 그것으로 끝이니까. 단지 너희들의 관례를 존중해서 미리 말해두는 것 뿐.”

 “론과 이야기가 될 거라고 믿는 자신감의 근거는 둘째로 하고서라도, 왜 갑자기 론이랑 하겠다는 거야? 너랑 붙어 다니는 걔들, 크레이브랑 또 누구였지? (고일, 하고 책에 눈길을 고정시킨 채 헤르미온느가 짧게 대답했다) 그래, 고일. 걔들 피아노과 아냐? 넌 늘 둘 중 한 사람에게 반주를 맡기는 걸로 알고 있는데.”

  

  

 드레이코는 어딘가 비웃는 기색을 띤 것 같은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 전에도 종종 그러하기는 했으나 론의 독주를 들은 후로 더욱 빈번하게, 드레이코는 크레이브나 고일이 제 바이올린에 맞추어 건반을 두드리기 시작만 해도 그들의 목을 비틀어버리고 싶은 충동을 느끼곤 했지만 그것을 해리 앞에서 입 밖으로 내어 말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는 단지, 즐거운 이야깃거리를 발견한 듯 바지런히 입을 놀리고 있는 해리의 말이 언제쯤 끝날까, 평범한 시비도 아니고 하필이면 생뚱스레 론 위즐리를 반주자로 하겠다는 말을 꺼낸 자신을 조금은 탓하면서 다소 짜증스레 그것을 궁금해 하고 있을 뿐이었다.

  

  

 “걔들의 연주가 네 고상한 수준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이제야 깨달았다면 다행스러운 일이지만, 내 생각엔 그냥 너희 집에 남아도는 돈으로 쓸 만한 반주자를 구하는 편이 나을 것 같아. 네가 알고 있는지 모르겠지만, 론은 널 싫어해.”

  

  

 마지막 문장을 끝맺는 해리의 눈은 입과는 달리 웃고 있지 않았다. 어머니를 닮아 아름다우노라 모두가 칭송하는 녹색의 눈동자는 그 부드러운 색채가 무색하리만치 얼음장 같고 준엄하여 흡사 이렇게 말하는 것처럼 들렸다.

 네가 감히.

 그 시선에 꾹 참아왔던 것도 부질없이, 드레이코는 또다시 내심을 내뱉고 말았다.

  

  

 “네 곁에서 언제나 위즐리는 과소평가 받는다는 걸 알고 있어, 포터?”

  

  

 별안간 헤르미온느가 고개를 반짝 치켜들었다. 드레이코는 갑작스럽게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그 시선에 담긴 의미를 조금 전과는 달리 전혀 읽어낼 수가 없었다. 부정하려는 것인지, 아니면──

 하여 드레이코는 그저 말을 잇는 것이었다. 제 말이 어디까지 가닿을 것인가, 그에 대한 확신도 없이.

  

  

 “위즐리를 곁에 꽁꽁 묶어두는 넌 실은 위즐리가 주목받기를 원하지 않는 거야. 영원히 네 시중을 들어주기를 원하는 거지. 포터의 반주자인 그 빨간 머리, 로 영원히 기억되도록.”

  

  

 일자로 다문 해리의 입술이 일순 새하얘졌다가 본래의 색으로 돌아왔다. 헤르미온느는 여전히 조금 아득해 보이는 얼굴을 한 채 드레이코를 올려다보고 있어, 그 순간적인 변화를 목격한 것은 드레이코 뿐이었다.

 이윽고 해리가 입을 열었을 때, 잇새로 새어나오는 목소리는 흡사 드레이코가 해리의 부모인 포터 부부의 연주 실력을 걸고 넘어졌을 때만큼이나 무시무시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말포이, 넌 친구라는 단어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아. 불쌍하게도.”

  

  

 친구, 그것은 드레이코가 해리에 대해 갖고 있는 가장 큰 약점이었다. 녹다 만 캐러멜처럼 찐득하게 들러붙는 크레이브와 고일을 일컬어 친구라고 말할 수는 없었다. 그것은 해리 포터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며 바이올린과의 학년 수석을 다투는 자신의 입지나, 나아가 까마득한 옛적부터 어마어마한 재력을 바탕으로 후원을 아끼지 않아온 덕에 오랫동안 음악계에서 확고부동한 지위를 차지해오고 있는 말포이 가문이라는 배경을 보고 다가오는 다른 교우들의 경우에도 마찬가지였다.

 색채와 소리, 호리호리한 전신이 한데 어우러져 울려 퍼졌던 단 하루의 여름날.

 그 정제된 외로움이 다시금 떠오르는 것과 동시에, 저절로 입이 열렸다.

  

  

 “잘나셨어, 포터. 넌 단지 그리핀도르 동……”

  

  

 하다가 돌연 드레이코는 입을 다물어버렸다. 이 상황에서 기숙사 동 이야기가 왜 나오는가 하듯 눈살을 한층 더 찌푸린 해리 앞에서는 결코 말할 수 없었다. 그러나 자신이 이미 패했다는 것을 알고 있는 드레이코는 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결국은 인정해버린 꼴이었던 것이다.

 내가 먼저였으면, 나였을 텐데.

 그렇게 외치고 싶은 것이 본심이었다는 것을.

  

  

 “……아무튼 위즐리는 나와 연주를 할 거야.”

  

  

 기개가 있다 해야 할지, 그러나 아무리 보아도 만용으로밖에는 보이지 않는 그 고집에 해리는 한숨과도 같은 헛웃음을 한 차례 뱉었다. 헤르미온느는 그런 해리와, 여전히 꿋꿋하게 버티고 선 채 해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드레이코에게 한 차례씩 시선을 준 후 비스듬하게 고개를 흔드는 뜻 모를 몸짓을 해보였다.

 다시 헛웃음, 그리고 해리는 입을 열었다.

  

  

 “어디 한 번 해 보시지.”

  

  

 흡사 내기해도 좋아, 라고 말할 듯한 기세였다. 그 뒷말을 하지 않은 것은, 내기 따위 너무나도 그 결과가 빤하여 걸 필요조차 못 느낀다는 마음 상태의 표현이었으리라. 쌩하니 바람을 일으키며 일어선 해리가 먼저 걸음을 떼어놓고, 책을 덮어 가방에 넣은 헤르미온느가 한 박자 늦게 일어나 해리를 따르려다 말고 잠시 몸을 돌려 자신을 향해 힐끗 시선을 던지는 것을 바라보며 드레이코는 생각했다. 도대체 내가 무슨 짓을 한 건가, 라고. 그리고 어쩐지 억울한 기분이 드는 것을 멈출 수가 없었다.

  

   

  

 * * *

  

  

  

 “이번 정기공연에서 내 반주 해 볼 생각 없어?”

 “뭐? 내가 왜?”

  

  

 곱지 않은 반응은 예상했던 것이지만 순간적으로 울컥 화가 치미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드레이코는 실룩거리는 미간을 진정시키기 위해 애를 썼다.

  

  

 “익숙한 건 좋지만 매너리즘에 빠질 수 있으니까. 가끔은 파트너를 바꿔보는 게 좋지 않겠어? 너에게도, 포터에게도, 그리고 나에게도.”

 

 

 딴에는 고심하여 고르고 고른 이유다. 설득력이 있어야 하지만 애원하는 것처럼 들려서는 안 됐다. 그러나 론은 첫 순간에 지었던, 일고의 가치도 없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의 황당하고 귀찮다는 표정을 허물기는커녕 눈을 반달 모양으로 구부리며 한쪽 입가를 살짝 끌어올렸다. 드레이코를 볼 때 늘 짓곤 하는, 도시 탐탁찮아하는 그 표정이었다.

 

 

 “내 매너리즘이나 해리의 매너리즘을 네가 걱정해줄 필요는 없어. 반주가 나 혼자 결정할 일도 아니고.”

 “포터의 허락이 필요한 모양인데 그 포터에게는 내가 이미 말했어.”

 “뭐? 그래서 해리가 뭐라고 했는데?”

 “좋을 대로 하라더군.”

 

 

 론의 눈썹이 꿈틀거렸다. 한껏 뒤틀려있던 표정이 순간적으로 허물어져, 아뜩한 내심이 고스란히 드러났다. 드레이코가 틀린 말을 전한 것은 아니었다. 단지 어조가 아주 조금 달랐을 뿐.

 

 

 “뭐, 서로 좋은 일 아니겠어? 요즘 썩 신통치 않은 포터에겐 다른 사람과 연주하는 게 신선한 자극이 될 거고, 위즐리 너도 포터에게 빌붙는다는 이야긴 더 듣고 싶지 않을 거 아냐.”

 

 

 론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 정도는 지극히 미미해서 거의 알아볼 수 없었지만, 드레이코에게는 갸름한 볼 아래 근육의 꿈틀거림이 일순 아주 선명하게 보였다. 론은 마치 울음을 삼키는 것처럼 무겁게 숨을 삼키고는 입을 열었다. 도드라진 울대뼈가 오르내리는 것을, 까슬한 말을 내뱉고 입을 다문 그 순간부터 무언가 틀어졌다는 것을 감지한 드레이코는 그저 바라보고 있었다.

 

 

 “싫어.”

 “절대로 포터를 버릴 수 없다는 건가?”

 “해리랑은 관계없는 문제야. 반주를 부탁하고 싶다면 정중하게 해. 매너리즘이니 뭐니 허울 좋은 핑계로 사람 깔아뭉개려 들지 말고. 넌 늘 그런 식인 것 같은데, 그렇게 다른 사람을 무시하면 뭐 얻어지는 게 있어? 크레이브나 고일 같은 멍청한 따까리들 말고?”

 

 

 카페테리아의 의자에 앉아 드레이코를 빤히 올려다보는 론의 손에 쥔 컵에서, 카페모카 위에 얹힌 휘핑크림이 흐물흐물 무너져 내리고 있었다. 그것을 본 드레이코의 머릿속에, 언제나 휘핑크림을 듬뿍 얹은 카페모카를 주문해 빨대 끝으로 크림을 건져 올리는 론, 거기에 무어라 토를 다는 헤르미온느, 소리 내어 웃으면서 옆에서 함께 크림을 떠먹는 해리의 모습이 단박에 떠올랐다. 보지 않고도 선명하게 그려낼 수 있으리만치 하나하나 자세하게.

 언제부터 보고 있었던 것일까.

 드레이코는 엷게 고개를 가로흔들었다. 무의식적인 동작이었다. 론의 응대는 발 디밀 틈 하나 없이 바싹 날이 서 있었지만, 한편으로 론이 지적하고 있는 것이 내용에 앞서 형식의 문제임을 상기했을 때 드레이코는 차라리 지금의 론의 반응이 나쁘지 않다고 생각했다. 다만 바로 입을 열지 못한 것은 말을 고를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한동안 도전적인 기세로 드레이코를 올려다보던 론이 이윽고 일어나 휘핑크림이 죄 녹아내린 카페모카 컵을 손에 쥐고 바람처럼 곁을 스쳐 멀어져갔을 때, 드레이코의 다문 입술은 아주 살짝 새하얬다.

 

 

 

 * * *

 

 

 

 “그래서 결국 누구의 반주도 하지 않기로 한 거야?”

 “응.”

 “해리와는 얘기했어?”

 “아니. 해리가 그렇게 말했다면 굳이 내가 다시 확인할 필요는 없을 것 같아. 초나 패르바티 같은 애들이 해리의 반주를 해보고 싶다고 노래를 부르는 걸 듣는 것도 지겹고. 게다가 꼭 반주를 하고 싶었던 것도 아니니까.”

 

 

 무언가 말하려는 듯 입을 열다 말고 헤르미온느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그녀는 해리와 론이 만나 한 마디씩 주고받기만 해도 드레이코 말포이가 헝클어놓고 간 것들이 전부 제자리로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해리는 드레이코에게 론을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 양보할 생각이 없었다기보다는 론이 드레이코의 반주를 수락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굳게 믿고 있었다. 해리에게는 양자가 똑같았고 그렇기에 그는 아무런 첨언도 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헤르미온느가 보기에 전자와 후자는 다소 뉘앙스가 달랐다. 이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단지 확신하는 것만으로는 부족했다. 움직임이 필요한 문제였다. 그러나 해리와 론 중 누구도 머릿속에서 맴도는 것을 밖으로 끄집어내지 않았다.

 헤르미온느는 다시 한 번 드레이코가 내뱉었던 말들을 하나하나 되짚어갔다.

 다분히 심술궂고 악의적이었지만, 분명 거기에는 일말의 진실이 있었다.

 하여 헤르미온느는 잠시간의 고찰 후, 론에게 해리와 다시 한 번 이야기를 나누어보라 권하는 대신 다른 말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론, 넌 독주나 협주를 해 볼 생각은 없는 거야? 피아노과의 이번 연주자 심사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고 들었는데. 루핀 교수님이 좋겠어. 평소에 널 많이 격려해주시니까, 좋은 결과가 있을지도 몰라.”

 “글쎄. 난 그럴 거라는 생각은 안 든다. 해리에게 빌붙어서 겨우 이름 석 자 알리는 나니까. 대놓고 말한 게 말포이 자식이 처음이긴 했어도, 그 말 자체가 별로 새롭진 않더라. 그래서 더 짜증이 났는지도 모르겠어. 게다가 하필이면 상대가 말포이였고. 여하튼 지금 생각해보면 굳이 그 자식에게 화를 낼 일은 아니지. 그 자식은 당연한 말을 한 것뿐이니까.”

 “론.”

 “이런, 헤르미온느. 네 시간을 너무 많이 뺏었다. 비올라과도 아직 심사가 안 끝났지? 하지만 플리트윅 교수님의 수제자인 너라면 분명히 독주자로 뽑힐 거야. 내가 보증해.”

 

 

 빌붙어 사는 론 위즐리의 보증이라 썩 믿음직스럽지 않을지도 모르겠지만 말이야. 하고 말하려다 론은 입을 다물었다. 그는 웃는 얼굴을 흐트러뜨리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며, 여전히 개운치 못한 표정을 짓고 있는 헤르미온느의 등을 떠밀어 연습실로 보냈다. 저녁 무렵의 교정은 한산한 편이었다. 홀로 쉬는 학생들도 있었지만 몇 안 되는 학생들의 대부분은 군데군데 두셋, 혹은 너덧이 모여 머리를 맞대고 악보를 보고 있었다. 그들 중 대다수는 이번 정기공연의 연주자일 것이다.

 론은 멍하니 벤치에 앉아, 아직 달착지근한 향을 풍기고 있는 빈 종이컵을 입가에 대고 괜스레 기울여보았다. 갈색의 액체가 조르르 흘러 입술에 닿는 것과 동시에 엷은 아쉬움이 파문처럼 동그랗게 번져나갔다. 그 쌉쌀한 서글픔이 바닥난 카페모카에 대한 것인지 아니면 다른 무언가에 대한 것인지 론으로서는 알 수 없었다.

 

 

 

 * * *

 

 

 

 어디에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누구도 알 수 없었다. 다만 분명한 사실은 론 위즐리가 가을정기공연에서 해리 포터의 반주를 하지 않는다는 소문이 알록달록하게 물든 가을바람보다도 빠른 속도로 퍼져나갔다는 것이다.

 소문이란 얄궂기 짝이 없다. 이러해도 저러해도 결국 뒷말이 나오기 마련이다. 삼총사 모두 그것을 실감하고 있었는데, 그 중에서 가장 뚜렷하게 생활에 지장을 받고 있는 것은 론도 해리도 아닌 헤르미온느였다. 당연한 말이지만, 본디 소문 옮기기를 좋아하는 치들은 당사자에게 직접 진상을 확인할 만한 배짱을 갖고 있지 않은 경우가 허다하다. 론이 해리와 드레이코 중 어느 쪽과도 함께 하지 않겠다고 분명하게 의사를 밝힌 것을 기억하는 헤르미온느는, 둘이 얼마나 심하게 싸웠기에 저러냐며 하루에도 몇 번씩 자신에게 물어오는 이들을 대하여 헤르미온느 그레인저와는 상관없는 일이니 드레이코 말포이에게 가서 물어보라며 소리를 지르고픈 것을 참기 위해 애를 썼다.

 오케스트라와 현악 4중주에 예상했던 대로 독주까지 맡게 된 그녀는 하나의 몸으로는 턱없이 부족한 연습량을 그러나 언제나 그래왔듯 훌륭하게 소화해내고 있었다. 종달새처럼 바삐 뛰어다니면서도 틈틈이 질문 공세에 시달리는 헤르미온느의 모습은 론으로 하여금 약간 미안한 마음이 들게 했다.

 한편 이렇다 할 말의 주고받음 없이 흐지부지된 상태에서, 결국 피아노과의 동급생인 초 챙과 호흡을 맞추게 된 해리는 딱히 론에게 데면데면하게 구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사근사근하게 굴지도 않았다. 그들은 여전히 비는 시간이면 헤르미온느가 가운데 앉은 채로 함께 식사를 했고, 함께 커피를 마셨으며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러나 헤르미온느와 해리의 무지막지한 연습량에 밀려 론은 차츰 그들의 얼굴을 이전보다 덜 자주 보게 되었다. 대규모 연주회가 있을 때마다 겪어왔던 일이지만, 이전까지는 최소한 해리와는 호흡을 맞추며 계속해서 얼굴을 보아 왔기 때문에 대부분의 시간을 혼자 보내게 되는 감각은 론에게 다소 생소하게 느껴졌다. 그러나 그가 혼자 식사를 하고 커피를 마시는 것에 빠르게 익숙해졌듯이, 혼자 있는 론의 모습이 사람들의 관심을 끄는 빈도 또한 빠르게 줄어들었다. 소문은 달아올랐던 것만큼이나 빠르게 식어갔다. 의문이 해소되었다기보다는 관심이 줄어들었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정기공연을 앞에 두고 연주자로 발탁이 된 사람은 그 나름으로, 그렇지 못한 사람은 또 그 나름으로 다들 자신의 사정으로 인하여 신경이 곤두서 있었기 때문이다. 정기공연 후 치러질 실기 시험 또한 긴장의 조성에 한몫을 하고 있었다.

 점심 식사 시간이었다. 구름 사이로 조각난 볕이 내리쬐는 창가 자리에 앉아 론은 창틀에 실기 시험 지정곡의 악보를 펼쳐놓은 채, 그러나 시선은 멀거니 창밖을 향해 있었다.

 하늘을 뒤덮은 구름에서 사자, 오리, 숟가락까지 찾아냈을 때 론은 등 뒤에서 인기척을 느꼈다. 그는 그것이 해리나 헤르미온느일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에, 고개를 돌려 눈앞에 예상치 못한 인물이 서 있는 것을 발견했을 때에는 뒤통수를 세게 후려 맞은 것처럼 멍해졌다. 한 올의 흐트러짐도 없이 깔끔하게 정리된 백금색의 머리칼을 망연자실하게 바라보는 론의 앞에서, 드레이코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난번엔 미안했어.”

 “미……”

 

 

 ──친 거 아냐?! 하고 터져 나오려는 외침을 가까스로 삼키며 론은 혼신의 노력을 기울였다. 드레이코 말포이는 정말로 론 위즐리에게 미안할 만한 짓을 했고, 따라서 그가 사과함은 당연하며, 그렇게 때문에 드레이코 말포이가 론 위즐리에게 사과를 했다고 해서 꼭 그의 정신이 나갔거나 근시일 안으로 지구가 멸망하리라고 단정 지을 필요는 없다는 것에 대해 납득하기 위해서. 그 결과, 론은 마침내 평정을 되찾고 드레이코의 기습에 담담하게 대꾸할 수 있었다.

 

 

 “……안하다는 말은 네 사전에 없는 줄 알았는데, 의외네.”

 

 

 가감 없이 감상을 말한 론은, 그것으로 드레이코의 용건이 끝났으리라 생각하고 막 베어 물려던 핫도그를 향해 다시 시선을 돌렸다. 그러나 론이 핫도그를 베어 물고 오렌지주스를 한 모금 들이켜 입 안에 든 것을 온전히 씹어 목구멍으로 넘길 때까지 그의 옆에 버티고 선 인영은 없어지지 않았다. 론은 결국 다시 고개를 들지 않을 수 없었다.

 한편 드레이코는 줄곧 고민해왔다. 그러나 아무리 머리를 굴려 보아도 만족스러운 답을 찾을 수가 없었다. 하여 그가 택한 것은 정공법이었다. 

 

 

 “정식으로 부탁하겠어. 이번 정기공연에서 피아노 반주를 맡아줘.”

 

 

 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 얼굴에 황당하기 짝이 없다는 표정이 떠오른 채, 드레이코에게는 다소 버겁게 느껴지는 짤막한 침묵이 흘렀다. 그리고 잠시 후 론의 입에서 내뱉어진 말은, 드레이코가 기대하거나 혹은 각오했던 것과 형태가 조금 다르기는 했으나 그 뜻은 어느 정도 분명했다.

 

 

 “너 설마 아직도 반주자를 못 찾은 거야?!”

 “내가 부탁한 건 너였으니까.”

 “이건 내 기억이 잘못됐거나 네 기억이 잘못됐거나 둘 중의 하나인 것 같은데…… 전에 내가 네 반주를 거절한 게 혹시 내 꿈속에서 일어난 일인 건가?”

 “거절하긴 했었지.”

 “그래! 역시 그렇지! 그런데 지금 와서 또 이 얘기를 꺼내는 이유가 뭐야?”

 “정중하게 부탁하라며. 그래서 정식으로 부탁을 하러 왔어.”

 

 

 정중하게 부탁하면 들어준다고 말한 적은 없어. 라고, 평소 같았으면 필시 쏘아붙였을 것이다. 그것이 둘 사이에 오고갈만한 대화의 정석이니까. 그러나 론은 자신을 내려다보는 드레이코의 잿빛 눈동자에서 평소와 같은 독기를 읽어낼 수가 없었다. 가령 말하자면, 정말로 부탁을 하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는 이야기다. 그것이 교묘하게 꾸며진 가면이라고 할지라도, 론은 그 호오가 분명치 않은 얼굴에 대고 제가 먼저 침을 뱉는 짓은 도저히 할 수가 없었다. 그 무름은 타고난 천성이기에, 어딘가 미심쩍은 느낌을 지울 수 없어하면서도 론은 드레이코의 ‘정중한’ 부탁에 마찬가지로 정중하게 대꾸할 수밖에 없었다.

 

 

 “후…… 네가 그렇게까지 말한다면야 정식으로, 거절하겠어. 미안해, 난 네 반주를 해줄 수가 없어.”

 

 

 드레이코는 화를 내지도 비아냥거리지도 않았다. 여전히 단정한 표정을 흐트러뜨리지 않은 채, 드물게 묵직한 빛이 어린 회색의 눈동자로 물끄러미 론을 바라보다 천천히 물어왔을 뿐이다.

 

 

 “포터 때문에?”

 “해리의 반주를 안 한다는 걸 알고 있을 텐데 왜 그런 질문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해리와는 별개야. 상관없는 문제라고 전에도 얘기했잖아.”

 “그럼 이유가 뭔데?”

 “솔직히 난 널 별로 좋아하지 않아. 너도 마찬가지일 거고. 그래서 네가 내게 왜 이런 부탁을 하는지 모르겠어. 벌칙 게임 같은 건가…… 아무튼, 아무 감정도 없는 사람과라면 모를까 내키지 않는 상대와 함께 연주를 할 수는 없어.”

 

 

 평소와 사뭇 다른 드레이코의 태도에 맞추어 론 또한 비교적 차분하고 진지하게 대답했으나 그뿐이었다. 그 안에 담긴 다시 한 번의 거절은 드레이코를 답답하게 만들었다. 거절을 예상 못한 것은 아니다. 답을 준비하지 못했을 뿐이다. 이러한 상황을 떠올리면, 막다른 골목에 들어선 것처럼 막막해져서 아무 생각도 할 수 없게 되곤 했던 것이다.

 때문에 무슨 말을 해야 할지도 모르는 상태로 무작정 드레이코가 입을 열었을 때, 그 입술 사이로 튀어나온 것들은 말하는 사람 본인에게도 어줍기 그지없는 말들일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그건 포터와 별개인 문제가 아니야. 내가 싫어했던 것은 포터고, 넌 그 옆에 있었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나와 틀어진 것뿐이니까. 애당초 딱히 널 싫어해야 할 이유가 내겐 없었어.”

 “그건 과정의 문제고, 결과적으로는 어쨌든 우린 서로를 싫어하잖아. 무리해서 함께 연주해야 할 이유가 있어? 대체 왜 이래? 크레이브나 고일에게 뭔가 문제가 있는 거라면 다른 녀석을 찾아. 정 곤란하면 피아노과 애들에게 물어보는 것 정도는 대신 해줄 수도 있어.”

 

 

 거절에 거절을 거듭한 끝에 마침내 드레이코의 미간에 어리고 만 깊은 주름은, 으레 그러리라 예상했던 것과는 별개로 왠지 모르게 론의 마음을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다. 그것은 그가 자신들을 보며 짓곤 했던 그 뒤틀린 표정과는 어딘가가 조금 달랐다. 무엇인지 모르겠으나 분명히 달랐다.

 론의 경험으로 미루어보아, 평소였다면 그 다음에 드레이코가 내뱉을 것은 해리와 자신 간의 우정에 대한 짜증 섞인 비아냥거림일 확률이 99%였다. 나머지 1%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대한 감탄사라든가 하는 잡스러운 것들로, 다음에 이어질 끈덕진 반문과는 전혀 관련이 없는 항목들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다음 순간, 론은 기어코 짜증을 내고야 말았다. 도무지 이해할 수 없는 드레이코의 점잖음 탓에 겉으로 표현할 수는 없었지만.

 

 

 “네가 포터의 반주를 하지 않는다면 나와 함께 연주하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잖아?”

 

 

 그러니까 아무 문제가 없는 게 아니라니까! 쳇바퀴 돌 듯 하는 대화에 론은 머리가 돌 지경이었다. 어떻게 대꾸해야 할지도 몰랐고, 무슨 대꾸를 해도 눈앞의 고집스러운 백금발에게 결코 닿을 수 없을 것만 같았다. 관자놀이를 짚으며 고개를 푹 숙이는 자신의 새빨간 뒤통수 위로 높지도 낮지도 않은 드레이코의 목소리, 뱉어지는 단어 하나 하나가 깃털처럼 조곤조곤 내려앉는 것을 론은 그저 느낄 뿐이었다.

 

 

 “그냥 한 번만 해줘. 꼬치꼬치 묻지 말고 따지지도 말고 그냥 한 번만. 내기 같은 거 아니야. 벌칙도 아니고. 믿든 말든 네 자유지만.”

 

 

 엎디어 드러난 목 언저리가 따끈했다. 아마도 흩어지기 시작한 구름을 헤치고 내려앉는 가을볕 때문에. 거기에 섞인 드레이코 말포이의 그 어느 때와도 사뭇 다른 시선과 목소리 때문에. 드레이코 말포이와 론 위즐리가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기이한 사태가 만들어낸 주변의 웅성거림 때문에…… 무언가 생각을 해야 할 것 같았지만, 머릿속은 엉망으로 헝클어졌다가 백지가 되기만을 반복하고 있어 도저히 생각다운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단 하나의 문장만이 뇌리를 맴돌았다.

 이 고역스러운 상황을 빨리 벗어나고 싶다, 는.

 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았다. 그러나 파묻었던 고개를 슬며시 들었을 때 드레이코가 기절할 정도로 놀라운 인내심을 발휘하여 여전히 자신의 옆에 서 있다는 것을 확인한 론은, 이론 수업 시간에 한참 딴생각에 빠졌다가 시계를 보면 5분도 채 지나 있지 않은 것을 확인할 때와 비슷한 절망감에 사로잡혔다.

 자포자기. 이를테면 그 한 단어에 모든 것이 축약되어 있었다. 마침내 상체를 일으키고 시선을 들어 드레이코를 바라보고, 다음 일련의 말들을 내뱉은 것까지 포함해서.

 

 

 “곡목이 뭔데?”

 “브람스 3번, 전(全) 악장.”

 “나 그거 한 번도 해 본 적 없어. 공연까지 앞으로 이 주……”

 “할 수 있어, 지금부터 시작하면.”

 “하…… 어떻게 되도 몰라. 네가 고집 부린 탓이니까.”

 

 

 에두른 승낙이었다. 드레이코의 얼굴에 희미하게 화색이 돌았다. 그것은 평소 같았으면 해리와 헤르미온느를 붙잡고 한 시간은 족히 수다를 떨었을 정도로 파격적인 광경이었으나, 론은 그다지 유쾌하지 못한 대화의 뒷맛 탓에 그 정제된 얼굴에 피어오르는 온기를 눈여겨볼 기분이 아니었다. 말은 그렇게 했으나 내뱉는 순간부터 깨닫고 있었다. 만약 연주가 형편없다면 화살은 자신에게 돌아오리라는 것을. 그는 자신이 섶을 지고 불로 뛰어들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이 모든 것이 자신을 해리와 갈라놓고 그리고 멋들어지게 물 먹이기 위한 드레이코 말포이의 수작이었을 가능성이 이제야 고려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왕 뛰어들고 난 뒤에야, 활활 불타버릴 일만 남지 않았겠는가 말이다.

 생각하며 론은 드레이코가 적어놓고 간 연습 시간과 연습실의 목록이 적힌 메모지를, 핫도그의 빵 사이에서 양상추가 말라비틀어질 때까지 망연히 들여다보고 앉아있을 뿐이었다.

 

 

 

 * * *

 

 

 

 인생은 언제나 계획대로 흘러가는 것은 아니다. 아니,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 경우가 훨씬 많다. 드레이코는 목석같던 론의 옆얼굴을 다시 한 번 떠올렸고, 짜증 섞인 시선을 악보대 위로 던졌다.

 그는 틀림없이 론이 자신의 연주를 트집 잡거나, 자신을 해리와 비교하거나, 여하튼 이런저런 구실로 시비를 걸어 입씨름을 벌일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러는 것도 크게 나쁘지는 않을 것이라는 스스로도 조금은 낯간지럽고 당혹스러운 예측까지. 그러나 론은 예상 외로 입을 꾹 다물었다. 눈에 선 악보와 건반을 바지런히 오가는 그 시선은 거의 드레이코를 향하는 법이 없었고, 향한다 해도 드레이코와 눈을 맞추는 대신 활의 움직임을 좇을 뿐이었다.

 교수의 호출 때문에 연습 도중 자리를 비운 론을 기다리며, 드레이코는 악보대 위에 놓인 반주용 악보를 공연히 활로 두어 차례, 다소 세다싶게 두드렸다. 론의 파란 눈동자를 독차지하다시피 하고 있는 그것을.

 

 

 “뭐하는 거야. 활 상하게.”

 

 

 살가움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론의 목소리가 등 뒤에서 날아왔다. 가볍게 움찔하며 고개를 돌린 드레이코의 눈에 론의 어깨 너머, 연습실의 길쭉한 유리창 바깥으로 이쪽을 힐끔거리곤 수군대며 지나가는 학생 몇 명이 보였다. 두 사람이 함께 연습을 시작한 후로 줄기차게 겪고 있는 일이었다. 드레이코에게는 딱히 개의할 것 없는 일이었으나, 론이 그러한 시선들을 신경 쓰리라는 생각은 드레이코를 조금 안절부절못하게 만들었었다. 그러나 론은 잘 버텼다.

 버틴다는 표현은 참으로 알맞았다. 그를 지배하고 있는 것이 능동적이고 긍정적인 감정이 아니라 체념이라는 것은 명백했다. 그리고 그 체념을 안겨다준 것이 드레이코 자신이라는 것도. 드레이코에게는 그 사실이 썩 만족스럽지 않았지만, 그는 연습을 계속하는 것 외에 어떤 수단을 써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지 알 수가 없었다.

 

 

 “좀 더 강하게 연주해. 여기에선 피아노가 돋보여야 한다고 했잖아.”

 

 

 그러면 열에 아홉은 은근하게 부아가 깃들어, 과연 강하기는 하나 다소 신경질적인 연주가 되고 말았다. 굳이 지적하지 않아도 론이 그것을 알고 있다는 것을 드레이코 또한 알았기 때문에, 그는 말을 하는 대신 참을성 있게 기다렸다. 론이 자신의 감정을 다스리고, 건반을 두드릴 손가락의 적정한 무게를 되찾을 때까지. 그러면서 소리 없이 되뇌곤 했다.

 난 포터처럼 네 빛을 덮어버릴 생각이 없어.

 넌 더 빛나야 해. 그날처럼.

 

 

 “뭐해?”

 “뭐?”

 “거기 아니잖아. 네 마디 다음이라고. 포르테.”

 “아, 미안.”

 “하긴 내가 뭐라 말할 처지가 안 되지. 적당히 하고 싶으면 그러던가. 어차피 망쳐도 내 탓이 되면 그만이니까.”

 “……포터랑 연습할 때도 그런 식으로 말하고 생각해?”

 “이게 진짜. 해리 얘기가 왜 또 나와! 자꾸 애꿎은 애 걸고넘어질래?”

 “네가 걸고넘어지게 만들잖아! 그 자식이 대체 널 어떻게 길들여놨기에 그 따위 지긋지긋한 자격지심을 끌어안고 사는 거야! 그 따위 걸 우정이라고, 무슨 보물이라도 되는 것처럼!”

 

 

 인생은 결코 계획대로 흘러가지 않는다.

 드레이코는 그것을 뼈저리게 느꼈다. 론은 하얗다 못해 파리하게 될 정도로 입술을 악다물었고, 잠시 후에는 고개를 뒤로 젖힌 채 눈을 깜박거렸다. 그것은 분명히 울음을 참는 동작이어서, 그 눈꼬리로부터 눈물이 흘러내릴지도 모른다고 생각한 드레이코의 전신이 긴장으로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나 고개를 바로 했을 때, 론의 눈에는 눈물이라고 불릴 만한 것은 기미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부연하자면, 그 눈은 건조했다. 지나치리만치 건조했다. 드레이코는 긴장이 풀리기는커녕 온몸에 이어 심장까지 옥죄어오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너 대체 나한테 왜 이래?”

 

 

 드레이코를 향하고 있는 것은, 비록 그 안에 담긴 감정이 제가 원했던 것과 전혀 다르기는 했어도, 그렇게나 똑바로 비춰지고 싶다고 생각했던 바로 그 파르스름한 눈동자였다. 때문에 그 바싹 마른 시선에 기뻐해야 할지 슬퍼해야 할지 드레이코는 알 수가 없었다.

 

 

 “진짜 원하는 게 뭐야?”

 

 

 드레이코는 눈을 질끈 감았다 떴다. 원하는 것, 그것 하나만큼은 명백했다. 어떻게 가져야 할지 방법을 모를 뿐, 자신이 무엇을 원하는지는 너무나도 분명하게 알았다. 그러나 그것이 이 상황에서는 결코 자신의 손에 들어오지 않으리라는 것도 알았다.

 하여 기어코, 온전한 거짓말도 진실도 아닌 대답을 할 수밖에 없었다. 그것이 흩날리기 직전의 잿더미처럼 물기 없고 위태로운 론 위즐리를 결코 안심시킬 수 없는 답변이라는 것을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번 정기공연에서 너랑 같이 연주하는 거. 제대로.”

 “……그것 뿐?”

 “일단은 그것 뿐.”

 “일단은?

 “그래.”

 

 

 드레이코는 론이 그것을 지적하리라는 것을 예상하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굳이 문장 속에 부사를 집어넣었다. 그는 그 단어로 인해 생겨날 수 있는 오해를 감수하고라도 결코 거짓말을 하고 싶지는 않았다. 그 단어는 일종의 포석이고 암시였다. 어떻게 받아들일지는 전적으로 론에게 달린 문제였지만.

 연주하는 것만으로 만족하다니, 그럴 수 있을 리가 없다.

 더군다나 결코 돌이킬 수 없을 이러한 지경까지 이르러서.

 

 

 “알았어.”

 

 

 고의는 아니었지만, 이용했다고 볼 수 있을 것이다. 론의 음악에 대한 애정과 책임감을, ‘너와 연주하고 싶지 않아’라는 결정적인 한 마디가 나오지 않는 이상 결코 두 사람의 연습실을 뛰쳐나가지 못할 그 신실함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우유부단함을. 그러한 모습으로 해리와 함께 있을 때의 론은 자신의 심기를 몹시 불편하게 만들었지만, 이제 와 자신 역시 그 모질지 못한 심성의 혜택을 받고 있다는 것을 드레이코는 부정할 수가 없었다. 미안함에 짐짓, 그러나 한편으로는 살얼음이 깨질까 두려워서 살그머니, 물으면서도.

 

 

 “반주, 그만두고 싶어?”

 “이제 와서 물어보면 어쩔 건데. 보나마나 네 남은 선택지는 크레이브 아니면 고일일 텐데 네가 원하는 수준을 내가 맞출 수 있을지는 몰라도 걔들보다는 나을 것 같다.”

 “네가 정말로 하고 싶지 않다면……”

 “부득부득 우겨서 이 지경을 만들어 놓고 무슨 소리야? 그보다 너 오케스트라 안 하지? 연습 시간을 늘려야겠어. 젠장, 연습실 자리가 없을 텐데. 루핀 교수님께 부탁해보고 안 되면 기숙사에서라도 하는 수밖에.”

 “학교 근처에 개인 연습실 있어. 거길 쓰면 돼.”

 

 

 론은 조금 얼이 나간 얼굴로 드레이코를 바라보았다. 거리감과 감탄이 뒤섞여 묘한 표정을 자아내고 있는 그 얼굴을 바라보다 드레이코가 고개를 돌렸을 때, 벽에 걸린 시계가 문득 눈에 들어왔다.

 

 

 “마침 연습실을 비울 시간인데, 같이 가보겠어? 네 시간이 괜찮다면.”

 “오늘 쓸데없는 일들 때문에 목표량만큼 연습을 못했으니 우리에겐 선택의 여지가 없어.”

 “……”

 

 

 연습을 하며 이따금 나누는 대화를 통해 드레이코가 알게 된 사실 중의 하나는, 론이 떠밀리는 듯한 느낌을 주는 표현을 자주 쓴다는 것이었다. 별 수 없잖아, 라든가 이제 와서 무슨 소용이야, 라는 식으로. 물론 그것은 공연이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무리하게 반주를 요구한 드레이코의 탓이 컸으나, 굳이 연습과 관계되지 않는 일에도 그런 식의 표현을 쓰는 것으로 미루어볼 때 그것은 살뜰하게 몸에 밴 론의 습관이었다. 자신이 조금 전 폭발하듯 고함을 질러 기어코 그를 상처 입히고 만 것은, 그 습관성 체념이 끔찍하리만치 싫었기 때문이다. 드레이코가 보기에는 충분히 수가 있고, 충분히 소용이 있는 일들이었다. 론이 매번 시도도 해보지 않고 주저앉는 것을 그는 용납할 수 없었다. 론은 일어서야만 했다. 일어서서, 저를 둘러싼 장막을 걷어치우고 바깥으로 나와야만 했다.

 그리고 그 손을 잡아 이끄는 것은 자신이기를 바라고 있다.

 ──결국 그것을 원했던 것이다.

 

 

 “그 전에 일단 저녁 좀 먹고. 여섯 시 반에 정문에서 만나는 게 어때?”

 “저녁은 그, 네 친구들과 먹는 거야?”

 “글쎄. 걔들은 한창 연습 중일걸. 오케스트라 연습이 이 시간이니까.”

 “그럼 시간도 아낄 겸 같이 먹지? 어차피 둘 다 혼자 먹어야 할 모양인데.”

 “난 혼자 먹는 거 별로 안 싫어해. 그리고 호기심의 대상이 되는 건 연습실과 무대 위에서로 충분하니까 그 외의 장소는 사양할게. 여섯 시 반에 정문.”

 

 

 그러니까, 무심한 것처럼 보였지만 결국은 안간힘을 쓰고 있었다는 것이다. 무어라 더 말을 붙여 볼 틈도 없이 단호하게 멀어져가는 뒷모습을 우두커니 바라보다 드레이코는 발길을 돌렸다. 적막한 사위로 노라발갛게 노을이 내려앉고 있었다.

 

 

 

 

 

20120118. To be cont.

 

 

 

 

 

* 얘들 데리고 패러렐 쓰기 싫은데 원작으로 할 게 없어서 자꾸 패러렐로 간다.

* 드레론 같은 드레론이라도 쓰고 싶었으나 그냥 해리 까는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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